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즈 포위전 (문단 편집) == 내용 == [[파일:31NSKZH.jpg]] [[노르망디 상륙작전|노르망디 상륙]] 이후 1개월이 넘도록 연합군은 독일군의 방어 및 지연전술에 말려들어 상륙지점 인근 내륙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고, 6월 6일 상륙부터 7월 중순까지 120,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독일군의 사상자도 비슷했으나 이쪽은 전력보충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에 미군은 7월 25일 코브라 작전을 실행, [[독일 육군]] 제7군의 전선에 구멍을 뚫었고 남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7월 30일, 미군은 [[조지 패튼|패튼]]이 곧 펼치게 될 프랑스 횡단의 시작점인 아브랑슈(도시)[* 당시 독일의 서부전구 사령관 클루게 원수는 미군이 아브랑슈를 점령하게 되면 그들이 덤불(보카주 지대)로부터 빠져나와 무엇이든지 할수 있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타임라이프 2차 대전》 전집에서 발췌]를 점령함으로써 좌측의 브로타뉴 반도와 우측의 중부 프랑스로의 공격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히틀러]]는 미군의 선봉을 강력한 기갑부대로 몰아쳐 바다로 밀어내기를 원했다. 당시 독일군은 노르망디에서의 철수를 검토하고 있었으나 히틀러의 명령은 확고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7월 22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으로 서부전선 사령부로 히틀러의 분노가 집중되었다. 한참 전에 이미 후퇴를 건의했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는 잘렸고, 롬멜은 클루게 원수를 비롯한 장성들과 지휘권 문제로 미친듯이 싸우는 동시에 패배주의자로 찍혀 히틀러 면담이 일체 금지당한 상태였다. 결국 발터 모델과 만슈타인도 자신의 직을 걸고 싸워서 간신히 히틀러의 삽질을 막았는데 클루게와 롬멜이 히틀러의 칼에 날라가면서 폭주하는 히틀러를 막을 장성들은 서부전선 사령부에서 전멸한 상태였다. 8월 7일, 모르텡 공세가 4개 기갑사단[* 제116기갑사단, 제2기갑사단, SS 1, 2기갑사단]으로 시작되었다. 곧 이어서 뤼티히(Luttich) 작전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이는 8개 기갑사단을 추가로 증원하여 총 1,400여 대의 전차로 북쪽을 찔러들어가서 노르망디의 상륙 교두보를 포위한다는 작전이었다. 이러한 대규모 기갑사단의 기동은 지난해 6월의 [[쿠르스크 전투]] 이후 처음이 될 터였다. 이것은 히틀러의 치명적인 전략적 미스였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노르망디 상륙]]을 애초에 막았으면 모를까, 일단 상륙이 된 이상 병력을 보존해서 프랑스 동북부 삼림지대로 후퇴하고, 서부전선의 기갑병력 상당수를 [[동부전선]]으로 돌려서 독일의 생명줄인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어떻게든 보전하는 것이 그나마 버티기라도 하는 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소련]]은 9월초부터 루마니아 영내에 대대적으로 침입하여 곧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확보하게 된다.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잃고 나니 독일은 극심한 [[석유]]난에 시달리게 되어, 플로이에슈티보다 생산량이 적은 [[헝가리]] 유전과 독일 내의 액화석탄으로 근근히 버티기가 되는데, 결국 이는 독일이 계획한 [[아르덴 대공세]]에서, 보급 문제를 '연합군의 물자로 해결한다.'라는 기막힌 발상을 생각해내게 된다. 당연히 연합군이 순순히 석유를 내주지도 않았고, 독일군은 500여 대의 전차는 물론 보병을 진격시킬 [[연료]]조차 마련할 수 없었는데 하필 공세의 주된 목표인 [[벨기에]]의 [[앤트워프]]를 확보하기 위해선 120~130km를 진격해야 했다. 독일군은 운이 따라주어야 최대 60km밖에 진격할 수 없었고, 실제로는 각종 [[병참]]문제가 맞물려 공세 초기 이후에는 깔끔히 실패하게 된다. 여하튼, 뤼티히 작전 초기[* 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 구현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캠페인/노르망디 상륙작전#s-2.12|317고지 전투]]'''는 바로 실제 역사에서 독일군의 당시 반격 경로상의 핵심 지점이었다. 이곳은 미군 1개 보병대대가 방어하고 있었다. 1주일 간의 전투 끝(독일군 수 개 기갑사단과 해당 대대를 미끼로 한 미군 구원군 수 개 사단+공군의 대결이었다.)에 대대는 50%의 사상자를 입었고, 독일군의 항복 권유가 2번 있었으나 방어에 성공했다.]부터 독일군의 암호 무선은 족족 감청되고 있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는 모르텡 공세에 앞서 2개 기갑사단과 2개 보병사단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며 독일군의 초기 공세를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군은 사전 포격도 생략하면서 기습의 효과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날이 밝아지자 로켓탄을 장비한 영국 공군의 [[타이푼#s-6|타이푼]]이 나타나서 제2SS기갑사단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이 날 영국 공군의 전술항공대는 294[[소티]]를 수행했고, 200여 대의 전차는 30여 대만 기동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연합군은 8월 7일 토털라이즈 작전으로 [[캉]]에서부터 팔레즈 방향으로 독일군의 [[교두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캐나다군]]과 자유 폴란드군이 주축이 된 이 작전은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연합군의 2개 기갑사단이 독일군의 배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곳을 방어하던 독일군은 10여 개 사단이었으나, 7월부터 지속적인 연합군의 공세[* 굿우드 공세, 블루코트 작전, 코브라 작전 등]로 탈탈 털린 상태라 기동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위치도 좋지 못했다. 참고로 이 캉-팔레즈 방향 공세에서 전차 [[에이스]]인 [[미하엘 비트만]]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 누가 비트만을 잡았는지는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영국군 또는 캐나다군의 [[셔먼 파이어플라이|파이어플라이]]의 공격으로 인해 전사했다는 설이 정설이다.] 그래도 독일군은 방어자라는 위치를 100번 활용하여 압도적인 열세에서 연합군을 상태로 잘 버티고 있었으나 이 공세작전으로 간간히 버티던 독일군의 군세를 꺾는데는 충분했다. 히틀러의 망상과는 달리 공세를 확대할 추가적인 8개 기갑사단들, 즉 제5기갑군은 연합군의 포위망이 닫히고 있음을 즉시 알아챘다. 전선 서쪽에서는 [[조지 S. 패튼]]의 3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귄터 폰 클루게]]는 지속적으로 독일군이 처한 위험을 알리려고 했지만, 전술했듯이 불과 3주 전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히틀러 암살 미수]]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던 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태였다. 8월 15일, 클루게는 전선시찰을 나갔다가 연락이 하루 종일 두절되었는데 히틀러는 그가 B 집단군을 이끌고 항복을 한다고 의심하여 [[발터 모델]]로 사령관을 교체하고, 클루게는 결국 [[음독]][[자살]]했다. 심지어 롬멜은 이전부터 히틀러와의 면담을 금지당했고, 더군다나 후퇴 및 연합국과의 협상을 권고하는 전문 모두 총통 비서실장이었던 보어만에 의해 전부 잘렸다. [[파일:ZKEw6xr.jpg]] 이 와중에 독일군은 포위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0개 사단 중 이미 8개 사단은 사실상 해체 상태였으며 [[무장친위대]] 4개 기갑사단의 전차를 전부 합쳐도 100대도 못 채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뤼티히 작전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패튼의 3군단은 아래서부터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팔레즈 포켓 안에 고립된 독일군은 항공기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는데, 이는 포위망에 갇히자 방공부대들의 보존을 위해 이들을 먼저 빼버린 이유도 컸다. 남은 건 [[후퇴]]였다. 제12 [[히틀러 유겐트]] 기갑사단이 21일까지 퇴로를 열어두는 동안 독일군 300,000명과 차량 25,000대가 간신히 탈출했다.[* 히틀러 유겐트 사단은 후미를 지키면서 연합군의 공세를 지연시켰다. 이 와중에 캐나다 육군 포로를 학살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을 지휘한 [[쿠르트 마이어]] 장군은 "포로들을 잡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밝혀져 이 일에 책임을 져야만 했다.] 하지만 50,000명의 사상자와 남은 200,000명의 독일군은 탈출하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후퇴의 어려움엔 빈약한 도로 사정도 한몫 했다. 포위망 자체가 좁혀지면서 우회로가 막혀 한정된 길에 병력들이 모이는 병목 현상이 빚어진데다가, 그 한정된 길도 간신히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오솔길이 대부분이었다. 위의 기록화처럼 하천을 건너는 다리가 자그마한 돌다리 수준인 경우도 많았다. 좁은 길에 많은 병력이 몰리면서 [[호커 타이푼|타이푼]]과 [[P-47|선더볼트]] 등의 연합 항공기들의 좋은 사냥감으로 전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